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율리안 민츠 (문단 편집) ==== 단점 ==== > 『율리안 민츠는 매우 잘 만들어진 양 웬리의 거울이었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민주공화정 체제나 전략전술에 관한 그의 사상은 모두 양에게서 상속받은 유산으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양은 독단적이기는 했어도 정치와 군사 양쪽 방면에서 철학자였으나 율리안 민츠는 양쪽 방면의 기술자에 불과했다.』 > ---- > 율리안 민츠에 대한 후세 역사가의 비판적인 평가/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8권 <난리편>, 김완, 이타카(2011), p.49 율리안은 우수한 군인이었지만 단점도 있었다. 바로 양 웬리의 숭배자였던 것. [[보리스 코네프]]는 양과의 대화에서 제법 진지하게 "율리안은 너를 지나치게 존경한다"며 '''스승을 본받으려고만 하는 제자는 결국 스승의 아류로 그치고 마니''' 독립심을 키워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본편에서 간간이 나오는 율리안 민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보면 '양 웬리의 훌륭한 후계자이나, 후계자 이상이 되지는 못했다'는 말이 나오니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다. 양 웬리 역시도 이 점을 인정하기도 했으니 간과할 요소는 아니다. 훗날 누군가는 율리안에게 [[양 웬리]]를 [[표절]]한 주제에 양 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모든 영광을 독점했다고 비방했다. [[더스티 아텐보로]]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 "율리안은 자신을 작곡가가 아니라 연주자의 위치로 놓았고 그것에 충실했다"며 변호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율리안은 양 웬리의 생전의 사상, 생전의 구상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구현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사상, 자신의 구상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것. 그러나 율리안 자신은 양의 사상을 현실에 '출력'하는 역할에 스스로 만족했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양이 이상을 구현하기도 전에 죽은걸 감안하면 율리안이 없으면 양의 노력은 반쪽짜리 성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알레 하이네센]]과 [[응웬 킴 호아]]의 관계가 떠오르는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